어느 날 문득 창틀이나 타일 줄눈이 미세하게 휘어 보입니다. 책을 읽는데 가운데 글자가 흐릿하고, 몇 글자는 지워진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검색하면 황반변성이라는 병명이 나오고, 그 옆에는 어김없이 "실명 원인"이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직선이 휘어 보이는 증상(변형시)과 중심이 흐려지는 증상은 황반변성의 특징적인 증상이 맞습니다1. 다만 이 병에는 상식과 어긋나는 지점이 두 군데 있습니다. 초기에는 아무 증상이 없다는 것, 그리고 "황반변성이면 실명"이라는 공포가 절반만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알아야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정해집니다.
왜 하필 휘어 보일까
황반은 망막 한가운데에서 중심시력을 담당하는 부분입니다. 글자를 읽고, 얼굴을 알아보고, 신호등을 확인하는 일은 전부 황반의 몫입니다. 황반변성은 이 부분의 시세포가 손상되어 빛과 색을 감지하지 못하게 되는 병입니다1. 손상된 자리에 맺힌 상은 일그러집니다. 그래서 직선이 굽어 보이고(변형시), 단어를 읽을 때 글자 일부가 지워진 것처럼 보이는 중심암점이 생깁니다1.
뒤집어 말하면 황반 바깥은 다른 문제입니다. 미국안과학회(AAO)는 황반변성이 중심시력을 잃게 하지만 주변시력은 침범하지 않는다고 명시합니다2. 눈앞이 완전히 캄캄해지는 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타격이 큰 이유는, 잃는 것이 하필 읽고 운전하고 사람을 알아보는 바로 그 시력이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아무 증상이 없습니다
미국 국립눈연구소(NEI)는 초기 황반변성에 대해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적습니다3. 휘어 보임과 중심 흐림은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의 증상입니다.
여기에 함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은 "한쪽 눈에만 발병한 경우에는 정상인 반대쪽 눈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초기 이상을 느끼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1. 두 눈으로 볼 때는 성한 눈이 흐린 눈을 보정해버립니다. 휘어 보이는 것을 오늘 발견했다고 해서 오늘 시작된 병이 아닐 수 있는 이유이고, 자가확인을 반드시 한 눈씩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30초 자가확인, 암슬러 격자
바둑판 모양의 암슬러 격자로 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방법은 미국안과학회와 질병관리청의 안내가 일치합니다12.
- 평소 안경을 쓴다면 안경을 쓴 채, 밝은 빛 아래에서 격자를 눈에서 30~33cm 정도 띄웁니다.
- 한 눈을 가리고 격자 중앙의 점을 바라봅니다.
- 중앙을 응시한 채로, 주변의 선들이 휘어 보이거나 끊기거나 지워진 부분이 있는지 살핍니다.
- 반대쪽 눈도 같은 방법으로 확인합니다.
선이 휘거나 빠져 보이는 부분이 있으면 안과에서 망막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다만 격자는 첫 관문일 뿐입니다. 대한안과학회는 진단 방법으로 암슬러 격자와 함께 형광안저혈관조영술, 빛간섭단층촬영(OCT)을 들고 있습니다4. 격자에서 멀쩡해도 증상이 계속되면 검사를 받는 쪽이 맞습니다.
"실명 원인"이라는 말의 실제 구조
황반변성은 전 세계 실명 원인 질환 중 세 번째이고, 서양의 65세 이상에서는 가장 흔한 실명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1. 무서운 말이지만, 구조를 뜯어보면 이 공포는 절반만 사실입니다.
황반변성은 건성과 습성으로 나뉩니다. 환자의 80~90%는 건성입니다25. 건성은 보통 수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고3, 시력 저하가 크지 않아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많습니다1. 습성은 황반 아래에 비정상 혈관이 자라나 피와 진물이 새는 유형으로, 전체의 10~15%에 불과하지만 중심시력이 급속히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15.
그런데 실명이라는 결과는 이 소수에게서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후기 황반변성에서 법적 실명의 79~90%가 습성에서 나왔다는 것이 대규모 역학 연구들의 집계입니다5. 환자 수로는 열에 하나인 습성이 실명의 여덟, 아홉을 만듭니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황반변성이냐"가 아니라 "건성이냐 습성이냐, 습성이라면 얼마나 빨리 잡느냐"입니다.
습성이어도 실명이 정해진 결말은 아닙니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질병관리청은 구체적인 숫자를 적어두었습니다. 치료받지 않은 습성 황반변성에서는 3년 내 약 75%가 시력 0.1 미만으로 떨어집니다1.
치료를 받으면 다릅니다. 습성 황반변성에는 비정상 혈관을 만드는 물질(혈관내피성장인자)을 차단하는 항VEGF 주사 치료가 있습니다13. 이 치료의 근거가 된 대표 임상시험(MARINA)에서, 주사 치료를 받은 환자의 94.6%가 12개월 시점에 시력을 유지했고(시력표 15글자 미만 손실), 33.8%는 시력이 오히려 좋아졌습니다. 주사 없이 경과만 본 비교군은 시력을 유지한 비율이 62.2%였고 평균 10글자 넘게 나빠졌습니다6.
치료받지 않으면 4명 중 3명이 3년 안에 시력 0.1 미만, 치료받으면 10명 중 9명이 시력 유지. 같은 병의 결말이 발견 시점과 치료 여부에 따라 이렇게 갈립니다. 휘어 보임을 알아챈 날 바로 검사를 받는 것의 가치가 숫자로 보이는 대목입니다.
40세 이상 7~8명 중 1명의 병
황반변성은 남 얘기가 아닙니다. 2017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우리나라 40세 이상 성인의 나이관련황반변성 유병률은 13.4%였습니다. 2010년의 6.4%에서 두 배 넘게 늘었습니다1. 고령화와 함께 계속 늘어나는 병이라, 질병관리청도 정기적으로 안과를 방문해 망막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합니다1.
정리하면 오늘 할 일은 세 가지입니다. 글자나 직선이 휘어 보인다면 미루지 말고 안과에서 망막검사를 받습니다. 변형시는 지켜보자가 통하지 않는 증상입니다. 지금 증상이 없다면 한 눈씩 가리고 암슬러 격자로 확인해봅니다. 두 눈으로는 이상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격자에서 정상이어도 나이가 들었다면 정기 안저검사를 챙깁니다. 초기 황반변성은 증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이 글은 질병관리청과 미국 보건당국, 학회 공식 자료와 동료심사 임상시험을 근거로 증상과 검사의 구조를 설명하는 정보이며, 개인의 눈 상태에 대한 진단이 아닙니다. 증상이 있다면 정밀검사와 전문의 상담으로 확인하세요.